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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개념과 기능

특집 • 독서와 국어 능력

독서의 개념과 기능

노명완 ․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1. 서론

학술적 개념을 가진 단어도 일상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학 술적 개념의 단어를 사용할 때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학술적 개념은 일 상적 맥락에서는 물론 일상적 의미로 사용해도 되지만, 학술적 맥락에 서는 반드시 학술적 의미로 사용해야 한다. 학술적 맥락으로 쓰인 단어 를 일상적 의미로 이해하면 그 뜻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이런 단어 의 예 중 하나가 ‘독서’라는 단어이다.

독서의 개념과 기능

독서라는 말은 ‘글(책) 읽기’로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상당히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독서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은 학술적 의미를 갖고 있는지 살피기 위해 우선 이 글에서는 독서와 관 련된 중요 학술적 주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독서에 대한 학자들의 연 구에서 얻는 의미가 바로 독서의 학술적 의미인 것이다.

이 글에서는 독서의 개념에 대한 학술적 고찰을 끝낸 후에 다시 독 서가 작용하는 기능(機能, function)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독서 는 지적 과정이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이 지적 과정의 영향을 포착하 기 힘들지만, 장기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독서의 지적 기능(function)

이 가져오는 엄청난 결과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 글의 후반부에서 는 바로 그런 독서의 기능과 그것이 개인, 사회, 국가에 가져오는 결과 를 찾아보고자 한다.

  1. 독서의 개념

한 단어의 의미는 그 단어가 쓰이는 맥락만큼 된다고 한다. 그만큼 한 단어의 의미가 많고 넓다는 뜻이다. 독서라는 단어의 의미도 상당히 많고 또 광범위하다. 독서의 일상적 의미도 많고 넓지만, 독서의 학술 적 의미는 더욱 깊고 넓다. 독서라는 단어의 개념이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여기서는 독서라는 단어와 관련되는 중요 주제들을 살 펴보고자 한다.

독서는 인간이 하고 있는 네 가지 언어적 소통, 즉 말하기, 듣기, 읽 기, 쓰기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네 가지 소통은 모두 언어(음성 언어 와 문자 언어)를 매개로 하면서 상호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말 하기에는 반드시 듣기가 수반되고, 쓰기에도 읽기가 동반된다. 읽고 말 하기를 하기도 하고, 쓰고 읽기를 하기도 한다. 그런 상호 관련성 측면 에서 볼 때, 독서의 의미를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법은 독서를 다 른 나머지 세 가지 소통 방식과 연관 지어 살피는 것이다. 즉, 독서를 독서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 듣기, 쓰기와 연관시켜 가며 살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글에서는 독서라는 용어와 함께 간간이 문식성  (文識性, literacy)이라는 용어도 사용하고자 한다. 문식성 개념이 바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모두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1. 인간 진화의 방향

모든 생물은 진화해 왔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그런데 모든 생물 의 진화에는 각각 방향이 있고, 그 방향은 생활에 편리한 쪽으로의 방 향이다. 흐르는 물에 사는 물고기(예: 붕어)는 몸을 유선형으로 진화시 켜 왔고, 진흙 속에 사는 물고기(예: 뱀장어)는 둥글고 길게 진화시켜 왔다. 그렇다면 인간의 진화 방향은 무엇일까? (재미로 옆의 사람을 꼼 꼼히 살펴보고, 그 신체에서 진화의 방향을 찾아보자.)

아래의 그림 자료는 인간의 진화 방향을 보여 주는 좋은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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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인간과 침판지의 두뇌 피질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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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인간의 발성 기관과 침판지의 발성 기관 비교

왼편 그림은 인간 그림이고 오른편 그림은 인간 다음의 영장류라 할 수 있는 침팬지 그림이다. <그림 1>의 두 그림은 모두 두뇌 피질의 신 경을 그것이 관장하는 신체 근육에 맞추어 인간과 침팬지의 신체를 비 율적으로 다시 그린 것이다. 그렇게 그리고 보니, 인간은 손과 입을 관 장하는 신경이 잘 발달되어 있고, 침팬지는 앞발의 엄지발가락, 뒷발의 엄지발가락이 잘 발달되어 있다. 신경이 하는 일의 대부분이, 인간의 경우는 손과 입의 움직임과 관련되는 일이고, 침팬지는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의 움직임과 관련되는 일임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그림에서 왼편은 인간의 발성 기관이고 오른편은 침팬지의 발성 기관이다. 인간이 원래 침팬지와 같은 조상에서 진화해 왔다고 본 다면, 인간의 발성 기관 진화는 앞으로 튀어나온 입에서 안으로 들어가 는 입으로의 진화라 할 수 있다.

<그림 1>과 <그림 2> 자료는 인간 진화의 방향을 잘 보여 준다. 그것 은 언어 사용의 방향이다. <그림 1>에서 인간의 입이 넓은 것, <그림 2> 에서 입이 안으로 들어간 것은 모두 언어 사용과 관련되는 신체의 진화를 보여 준다.

  1. 문명 발전의 동인(動因)

아래의 <표 1>은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제시한 자료로, 지구상에 원시 생명체가 출현한 이래 지금까지의 약 20억 년 동안 일어난 중요 사건들을 1년이라는 시간 속에 넣어 본 것이다. 이 자료에 의하면 원숭 이와 구별되는 ‘슬기로운 인간(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은 1년 중 12월 31일 오후 8시이다. 실제 시간으로 보면 약 200만 년 전이 된다. 이때 부터 현재까지 약 200만 년의 기간이 인간이 음성 언어를 사용한 기간 이다. 그리고 인간이 문자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2월 31일 자 정 90초 전이며, 실제 시간으로 보면 약 5천 년 전이 된다.

<표 1> 1년 시간표로 본 인간 출현과 언어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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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음성 언어 사용 기간이 약 200만 년 정도 되는데, 문자 언어 사용 기간은 불과 5천여 년이다. 그런데 음성 언어를 사용한 기간 동안 의 인간 생활은 원시생활인데 비해, 문자 언어를 사용한 기간의 생활은 문명 생활이었다. 이 자료를 통해 본다면, 문명의 발전은 분명 문자 언 어의 사용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라 추정해 볼 수 있다.

  1. 아동의 신체 발달과 지능 발달

인간과 침팬지, 그리고 인간 아동의 성장과 발달에 관한 아래의 자 료를 살펴보자.

<표 2> 인간 아동의 성장․발달 및 인간․침팬지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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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는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고(바로 아래 단계의 영장인 침팬지

도 언어를 사용하지 못한다), 두 번째는 인간의 신체 발달에 비해 언어 발달이 매우 일찍 일어난다는 점이다.

아동 발달에 관한 다른 자료를 하나 더 살펴보자. 이 자료는 아동이 출생한 이후 매 6개월마다 조사한 아동의 언어 발달이다.

<표 3> 아동의 언어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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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자료에 의하면 아동은 약 2.5세(30개월)가 되면 의사소통에 별 문제가 없는 완전한 구조의 언어(3어문 구조: ‘주어+목적어나 보어+동 사’ 형태)를 사용한다. 그리고 4세 정도 되면 거의 성인 언어와 같은 언어 발달을 보인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하나는 아동의 언어 발달이 성인 수준에 이르는 4세 정도에 아동의 지능 발달도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른다는 점이다. 아동의 두뇌가 태어날 때부터 언어 사용이 가능할 정 도로 크다는 점과 언어 발달이 거의 완성되는 즈음에 지능 발달도 거 의 완성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언어 사용이 지능 발달의 원천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가설을 가질 수 있게 된다.

  1. 학교 교과의 수업 시수

학교에서는 국어, 사회, 도덕, 과학, 수학 등 여러 교과를 가르친다.

그런데 이들 교과의 수업 시수는 교과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아래의 자료가 이를 잘 보여 준다.

<표 4> 각 교과의 주별 수업 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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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별 수업 시수는 곧 그 교과의 중요도를 나타낸다. 수업 시수가 많으면 그 교과는 그만큼 중요한 교과, 그래서 학생들에게 많이 지도해 야 하는 교과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위의 자료에 의하면, 초등학교의 경우 국어 교과의 수업 시수는 도덕 교과 수업 시수의 6~7배, 사회나 과학 교과의 2배 정도 된다. 국어 교육의 핵심 지도 내용이 말하기, 듣 기, 읽기, 쓰기의 언어 사용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들 언어 사용 에 대한 교육적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국어 교과의 수업 시수는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편이 다. 위의 자료는 학교 교육에서 언어 사용을 지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 요한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1. 교과별 문제 풀이의 어려움 정도

교과별 문제 풀이에 대한 아래의 자료를 먼저 살펴보고, 직접 풀어 보기도 해 보자.

주관식교과객관식
20,000원을 예금하여 1년 만에 찾은 돈이22,400원이다. 연이율은 몇 %인가?답 ( %)
수학
4만 원을 예금하여 1년 만에 찾은 돈이45,200원이다. 연이율은 몇 %인가?Ⓒ 10% Ⓒ 11% Ⓒ 12% ④ 13%
성냥개비의 깜부기불을 만들어 산소가 들어 있는 집기병 속에 넣으면 깜부기불은어떻게 되나? 답 ( )
과학
촛불을 비커로 덮으면 어떻게 되나?ⓛ 차츰 꺼진다. Ⓒ 더 잘 탄다.Ⓒ 즉시 꺼진다. ④ 변화가 없다.
* 다음 시조에 알맞은 제목을 붙이시오.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 하자스라. 사람이 되어 나서 옳지 못하면,마소를 갓 고갈 씌워 밥 먹이나 다르랴.답 ( )

국어
* 다음 시조에 알맞은 제목을 붙이시오.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 하자스라. 사람이 되어 나서 옳지 못하면,마소를 갓 고갈 씌워 밥 먹이나 다르랴.Ⓒ 수확 Ⓒ 가을 Ⓒ 바람 ④ 한가함

위의 수학, 과학, 국어 문제에서 수학의 경우는 문제가 주관식이든 객관식이든 풀이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 객관식 문제의 답지가 모두 숫 자로 되어 있고, 이들 숫자는 숫자일 뿐,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 기 때문이다. 과학 문제는 객관식이 조금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문제 해결에 결정적 도움은 되지 못한다. 수학 문제나 과학 문제 모두 문제 를 풀기 위해서는 문제 밖에서 문제 풀이에 매우 중요한 지식(문제 풀 이용 공식이든 중요 개념이든)을 가져와야 한다. 외부에서(더 자세히는 기억 속에서) 관련 지식을 가져오지 않으면 이들 교과의 문제는 절대 로 풀 수 없다. 외부에서 지식을 가져와야 한다는 점에서 과학 교과 그 리고 수학 교과에서조차도 기억이 매우 중요한 학습의 수단이 된다.

이에 비해 국어 문제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국어 문제의 풀이 에는 외부에서 가져올 지식이 전혀 없다. 그 대신 주어진 지문 속의 내 용을 가지고 제목이라고 할 수 있는 지식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는 달 리 말하면 주어진 의미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수학이나 과학의 문제 풀이는 지식의 적용이지만, 국어의 문제 풀이는 지식의 생

산이다. 지식(언어)으로 지식(언어)을 만들어 내는 이런 사고가 바로 언어 처리이며 언어 사용인 것이다. 국어 공부에서 기억이 크게 요구되 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교과적 성격 때문이다.

  1. 독서의 기능

위의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독서, 더 넓게 보아 인간의 언어 사용은 인류 진화의 방향, 아동의 지적 성장과 발달, 학교에서의 교과 교육과 문제 풀이 등 여러 면에 매우 강한 영향을 끼쳐 왔다. 위의 장에서 살 펴보았듯이 인간의 계통적 진화와 개체적 발달, 학교 교육에서 언어 사 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살필 수 있는 자료들이다. 이번 장에서는 독서 가 우리의 개인 및 사회적 삶에서 어떤 기능(機能, function)을 담당하 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독서는 문명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앞에서도 잠시 살펴보았듯이, 인간의 문명은 문자 언어의 사용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을 캐나다의 심리학자 올슨(Olson)은 아래와 같이 간명하게 말하고 있다.

“언어는 인간 개념의 핵심이다. 음성 언어의 사용으로 인간은 인 간다워졌고, 문자 언어의 사용으로 인간은 문명화되었다.” (The faculty of language stands at the center of the conception of mankind: speech makes us human, and literacy makes us civilized.)

시간과 공간 속으로 곧 소멸해 버리는 음성 언어와 달리, 문자 언어 는 오랫동안 기록으로 보존되어 있다. 이런 보존으로 인해, 인간의 문

자 언어 처리는 음성 언어 처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깊고 더 넓어진다. 바로 여기서 고등 정신 기능(higher mental functioning) 이 이루어지며, 이 고등 정신 기능이 바로 과학과 문명을 이루어 낸 원 동력이 되었다. 달리 말해서, 바로 독서가 인류의 과학과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1. 독서는 의미 창조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작문은 매우 높은 수준의 의미 창조 과정이다. 필자가 창의적으로 생각해 낸 의미(내용, 지식, 정보, 느낌, 생각 등)가 작문을 통해 글이 라는 문자 언어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작문 못지않게 독서도 의미 창조의 과정이다. 음성이든 문자든 언어 는 그 언어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의미 있는 대상이 된다. 그 언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언어가 아무 의미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의미는 언어에 있지 않고 그 언어를 다루는 사람(필자 나 독자)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글을 읽는 사람은 쓰인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읽는 과정에서 많은 새로운 의미 생성의 지적 작용을 한다. 글을 읽고, 읽은 글을 읽은 그대로 회상하고 표현한다면 이는 분명 의미 창조는 아니다. 그러나 글을 읽으면서 그 내용을 이해하고, 적용하고, 분석하고, 비교하 고, 통합하고, 종합하고, 평가하는 것 등은 모두 읽은 언어를 자료로 하 여 더 깊고 더 넓게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지적 작용이다. 일상의 읽기 또는 독서에서 이런 높은 수준의 지적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아래의 문장을 읽어 보자.

  • 철수는 먼 산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이 글을 읽고 독자는 먼저 그 문장의 문면적(文面的, literal) 뜻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것도 의미의 창조이다. 읽기 전에는 몰랐던 것을 읽고 나서 알게 되었으니 의미 창조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에 더 하여 독자는 더 많은 생각을 할 것이다. ‘철수가 무슨 큰 고민에 빠져 있는 것 아닌가?’, ‘철수가 헤어진 애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등의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 모두 의미 창조이다. 글을 읽고 무슨 생각 을 하였다면, 그 생각이 무슨 생각이든 그것은 모두 의미 창조인 것이 다. 그래서 독서가 의미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1. 독서는 지식 획득과 지혜 확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독자는 글을 읽으며 글로부터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의미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우리의 지식이나 정보는 거의 대부 분 독서를 통해서 획득되었고 창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독서는 글을 통한 문면적 이해에 그치지 않는다. 독자의 사고 활동 이 독서에서 얻는 지식 획득 그 자체에 머물지 않고, 그 지식이나 정보 를 더욱 넓고 깊게 확장해 나가는 매우 능동적인 사고이다. 철수에 관 한 앞의 문장에서 보았듯이, 독자는 이 글을 읽으면서 ‘철수가 먼 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는 문면적 이해에 더하여 그가 왜 산을 바 라보는지, 산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등 많은 추가적인 생각을 더 하게 된다. 바로 이런 추가적인 생각, 능동적인 사고가 독자의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넓혀 주는 영역 확장의 사고이다. 그리고 이런 ‘영역 확장적 사고’가 바로 지혜(知慧, wisdom) 인 것이다.

지식을 지식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은 지식의 획득이 된다. 그러나 독 서를 하면서 받아들인 지식에 독자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더하여 더 깊고 더 넓고 더 높게 생각하여 그 지식의 관련 영역을 확장해 나가면 그것이 지혜가 된다. 글을 읽으며 이해하고 적용하고 분석하고 비교하

고 판단하고 종합하고 평가하는 이 모든 사고 활동이 바로 받아들인 지식에 자신의 사고를 추가하는 고등 수준의 사고요, 지혜(知慧)인 것 이다. 가지고 있는 것을 더 현명하게 활용하는 것이 바로 지혜이며, 그 런 점에서 독서는 그 자체가 지식의 획득임과 동시에 지혜의 확장이다.

  1. 독서는 초인지적 사고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인간은 동물적 수준의 저급한 사고(思考)도 하지만, 때로는 신과도 같이 매우 높은 수준의 사고도 한다. 그런 고등 수준의 사고 중에서 가 장 높은 사고가 바로 초인지적(超認知的, meta-cognitive) 사고이다. 자 신의 사고를 들여다보면서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바른 방향인지 아닌 지 등의 판단을 하고, 혹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경우에 이를 바로잡으려 는 수정이나 조정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로 초인지적 사고이다. 달 리 말해서, 초인지적 사고는 ‘자신의 앎의 과정을 알고 이를 조정해 내 는 사고’인 것이다.

브라운(Brown)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가 재미있는 실험 하 나를 했다. 그녀는 공부를 잘하는 집단의 학생들과 공부를 잘하지 못하 는 집단의 학생들에게 각각 컴퓨터 화면의 글 한 편을 이 글 내용에 관한 시험에 대비하며 읽으라고 하였다. 다음 날 연구자는 같은 집단 학생들에게 같은 글을 주면서 이번에 다시 한 번 읽으라고 하였다. 그 다음 날에도 연구자는 역시 같은 글을 주고 또 읽으라고 하였다. 이렇 게 세 번 글을 읽히면서 연구자는 글을 읽는 학생들의 눈동자 움직임 을 매우 성능이 좋은 레이저 카메라로 촬영하였고, 눈동자 움직임의 유 형을 분석하였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처음 읽기에서는 그 글의 매우 중요한 부분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눈동자가 그런 부분에 더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두 번째 읽을 때에는 첫 번째와는 달리 중

간 정도의 중요한 정보에 눈동자를 오래 멈추었다. 그리고 세 번째 읽 기에서는 숫자나 고유 명사와 같은 매우 세세한 부분에까지 주의를 기 울이며 읽었다. 즉,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또 는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이고, 아직 잘 모르고 있는 부분(기억하 지 못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판단해 가며, 이해와 기억에 효율적인 방법과 전략으로 읽기를 한 것이었다. 이에 비해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경우, 세 번의 읽기에 나타난 눈동자 움직임의 유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들은 처음 읽을 때나 세 번째 읽을 때 모두 글의 중요 부분에만 주의를 기울였다. 달리 말해서, 이들은 자신의 이해나 기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따라서 자신의 읽기 과정을 효율적으로 조절하지 못한 것이다. 효율적인 독서는 자기 통제력까지 갖는 초인지 적 사고의 원동력이 된다.

  1. 독서는 고급 수준의 교류, 교감, 설득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급히 소멸해 버리는 음성 언어와 달리, 책에 쓰여 있는 문자 언어는 소멸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글을 읽는 독자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넉넉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독서 과정을 조절해 나 간다. 천천히 읽기도 하고, 내용을 음미하기도 하고, 때로는 추리나 상 상도 하면서 여유 있게 글을 읽는 것이다.

독서는 독자와 필자의 만남이다. 독서에서의 독자와 필자의 만남은 지극히 개인적인 만남이다. 마치 대화에서의 행동과도 같이, 독자는 필 자의 글을 그대로 받아들여 수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되묻듯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읽은 글을 기초 자극과 자료로 활용하면 서 더 깊고 더 넓게 추리․추론을 하고, 비판을 하기도 한다.

독서에서의 만남과 소통은 음성 언어를 통한 대화에서의 소통보다 훨씬 고급스럽다. 일반 생활에서의 만남은 대체로 잘 아는 사람들 사이

의 만남이고, 그래서 그 대화는 서로 잘 아는 내용의 대화가 되기 쉽 다. 그런데 독서에서의 만남은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의 만남이다. 읽 는 글도 대체로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의 글이다. 그래서 이런 글 읽기에 는 세심한 주의(예: 밑줄 긋기)와 높은 수준의 지적 사고가 요구된다. 그러므로 독서에서의 만남은 지적 사고의 수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독서가 고급 수준의 지적 교류가 되는 것이다.

독서에서 읽는 글이 정보 중심의 글이 아닌 정서 중심의 글이라면, 이런 글 읽기에서의 만남은 그야말로 인간적 만남이 된다. 분석과 비판 과 평가 중심의 설명문이나 정보문 읽기와는 달리, 정서적인 글 읽기는 이해와 긍정과 공감의 심리적 효과가 있다. 그런 점에서 독서는 공감적 교류의 원동력도 되는 것이다.

  1. 독서는 창의적 직무 수행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독서는 ‘일하기’이다. 학생이 학교에서 교과서를 읽는 것은 학생의 본분인 ‘공부하기’이다. 직장의 사무원이나 공무원이 직장에서 하는 독 서는 그 모두가 자신이 해야 할 일, 즉 직무를 하는 것이다. 공문서를 읽는 일, 회의 자료를 만들기 위해 자료를 읽고 수집하는 일, 회의 결 과를 읽으며 다시 한 번 그 내용을 점검하는 일, 민원에 답하기 위해 관련 법 조항을 참조하거나 과거의 관련 기록을 찾아보는 일 등 직장 에서 하는 읽기는 그 모두가 ‘일하기’인 것이다.

직장에서의 독서, 직장 일하기의 일환으로 하는 읽기는 과거의 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읽기가 아니다. 직장의 회의에서 다루는 주제나 문제 는 항상 새로운 주제ㆍ문제이다. 새로 받아 읽는 공문서도 새로운 내용 의 공문서이다. 민원도 과거의 민원과는 다른 새로운 민원이다. 이렇듯 하는 일 자체가 매일매일 새로운 일이기에 이 일의 처리를 위한 읽기 도 매번 새로운 창의적 읽기이다. 그런 점에서 직장에서의 읽기나 독서

는 항상 창의적인 직무 수행이 된다.

직장에서의 직무 수행적 독서는 담당 직위가 높을수록 더 깊고 넓은 창의적 사고를 요구한다. 어느 직장에서든지 그 조직에서 가장 아래에 위치한 사람의 일은 머리를 사용하기보다는 근육을 더 필요로 하는 일 이기 쉽다. 또 이런 일은 과거에 했던 일과 별반 차이가 없는 매우 반 복적인 일이기 쉽다. 거기에는 깊은 생각도, 높은 창의성도 그리 크게 요구되지 않는다. 그러나 직장의 조직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하 는 일은 사뭇 다르다. 이런 사람이 하는 일은 근육적 일이 아니라 머리 를 써야 하는 일이다. 즉, 노동이 아니라 사고(思考)인 것이다. 이런 사 람이 하는 일일수록 창의성도 더 많이 요구된다. 한 번 잘못 판단하게 되면 그 결과가 조직 전체에 치명적일 수 있다. 그래서 더 많이 더 깊 게 그리고 더 치밀하게 분석하고 판단해야 한다. 직장에서의 독서가 바 로 그런 고급 사고의 수단이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1. 독서는 민주 사회 확립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한때는 글을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는 능력 이 그 사회의 엘리트만의 독점물로 생각되었다. 만일 농민이나 노동자 들이 글을 깨치게 되면, 이들이 일은 하지 않고 정치에 간섭만 하게 된 다고 생각하여 아예 이들에게 글 읽기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금속 활자의 발명과 보급은 농민과 노동자들을 생각할 수 있고 판단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금속 활자 의 발명으로 책이 대량으로 생산되었고, 책의 보편적 보급으로 공교육 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을 통해 지식과 정보가 전체 국민 들에게 보편화되었고, 또한 글을 읽고 쓰는 과정에서 의식과 판단이 높 아지게 되었다. 그 결과 농민과 노동자들의 읽기와 쓰기는 결국에는 엘 리트만의 봉건 사회를 무너뜨리고 민주 사회를 형성하는 정치ㆍ사회적

변혁까지 낳았다.

대부분의 선진국을 비롯하여 세계 대부분의 민주 사회에서는 국민 교육의 최고의 목표를 읽기와 쓰기에 두고 있다. 민주 사회에서는 국민 개개인의 인권을 매우 중요한 천부적 권한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민주 사회에서는 국민 개개인의 교육권도 매우 중요 한 인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의무 교육 연한을 최소한 고등학교까지 올 려 ‘모든 국민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선언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문식권(文識權, Right to Read and Write)인 것이다. 인권 은 한 개인이 자아의 필요와 사회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해 가며 살아 갈 수 있을 때에 보장되는데, 교육이 바로 그런 인권 보장의 중요한 수 단이 된다. 그리고 그런 교육의 핵심에 바로 독서와 작문이 있는 것이 다. 이런 점에서 아래에 제시된 읽기와 쓰기, 독서와 작문에 초점을 맞 춘 하버드 대학의 교육 목표는 여러 사회, 여러 국가의 귀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하버드 대학의 학생들은 인류 최대 문화유산인 책을 읽고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All of our students should know how to interpret a great humanistic text.)

“우리 하버드 대학의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고 설득력 있 는 글로 써 낼 수 있어야 한다.” (All of our students should know how to compose a literate and persuasive essay.)

  1. 결 론

독서는 중요하다. 독서는 한 개인의 지적ㆍ정의적 성장에 중요하고, 사회의 운용과 유지 발전에 중요하다. 독서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중요 하다. 전 국민은 독서를 통해서 지식을 획득하고 지력도 높이고 지혜도 넓혀 간다. 그래서 국민 개개인의 독서력 향상은 곧 국가의 지식과 지 력과 지혜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독서는 그만큼 개인적이고, 사회적이 고, 국가적이다. 그래서 각국에서는 국민의 독서력 향상에 국가적 관심 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독서의 중요성과 독서 교육의 필요성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 는 아직도 독서에 대해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기대되 는 만큼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대학 입시에 억눌린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입시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독서를 억제시키기도 한다. 교과서의 지식 암기를 학생의 사고력 신장보다 더 중요시하고 있 는 실정이다.

독서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아직 상당히 부족한 상태이다. 공공 도 서관은 태부족이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고 그 실상이 너무 초라한 형편 이다. 장서도 부족하고, 일하는 사람도 부족한 편이다. 도서 구입과 도 서관 운영의 재원도 부족하며, 도서관 나름의 프로그램은 거의 없는 실 정이다.

독서에 대한 국가 차원의 관심과 정책 개발도 아직 요원한 상태이 다. 전 국민의 독서 권장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도 아직 많이 미흡한 상태이다. 독서문화진흥법이 제정되기는 하였지만, 그 세부 규정에 대 한 국가적 시행 노력과 지원이 많이 부족한 상태이다.

한때 우리나라는 새마을 운동으로 국가의 면모를 새롭게 바꾼 경험 이 있다. 독서가 바로 제2의 새마을 운동이 될 수 있다. 새마을 운동이 물리적 환경 개선에 많이 치중되었던 점에 비하면, 독서는 그야말로 정

신 개혁, 사고 개혁, 의식 혁명, 교육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매우 중요 한 운동이 될 수 있다.

비용 면에서도 독서 운동은 예전의 새마을 운동보다 훨씬 적은 재정 적 투입으로 훨씬 더 큰 개혁을 가져올 수 있다. 책 읽는 사회(reading society)를 지향하고, 독자의 나라(nation of readers)를 만들며, 읽기와 쓰 기를  통해  민주주의(democracy)를  실현시키는  문식성의  기능(機能, functions)을 생각하면서 독서와 작문을 중심으로 하는 문식성 교육의 진흥에 다 같이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학교 교육이 문식성 중심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독서, 이에 더하여 작문 은 우리 개인에게, 우리 사회에, 우리 국가에, 우리 학교 교육에 그만큼 중요하고 또 그만큼 절실히 요구되는 우리 모두의 ‘목표’요 동시에 ‘과 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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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개념과 기능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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